지난해 12월, 강구안 문화마당에 한 시민단체가 공식 출범했다. 통영시민참여연대. 출범식에서 초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통영시민참여연대는 정치와 무관하며 어떠한 정치 논리도 거부한다." 창립 선언문에는 "정파와 이념을 넘어 오직 시민의 안녕과 지역 발전을 위해 행동하겠다."는 문장이 담겼다. 그날의 목소리는 맑고 힘찼다. 참석자들은 '시민이 주인 되는 통영'을 함께 선언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이 단체가 활동 기간에 어디에 집중했는지는 관련 지역 언론의 보도들이 말해준다. 천영기 시장 측을 겨냥한 의혹 제기와 비판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것이 정당한 권력 감시였는지, 아니면 선거를 앞두고 한쪽 편에 기운 활동이었는지는 시민들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다만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은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결성된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 진영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활동을 했다면, 그것이 과연 선언문에서 약속한 '정치와 무관한' 활동이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선거가 끝났다. 강석주 후보가 44표 차로 통영시장에 당선됐다. 그 44표의 진실성을 놓고 지금 통영은 조용히 갈라져 있다. 선거 당일 투표지 분류기에서 미분류된 표 2,300여 장 중 240여 표가 천영기 후보의 표로 추가 확인되면서 격차가 283표에서 44표로 줄었다. 기계가 걸러낸 표들에서 이미 이런 편차가 드러났다면, 기계가 유효표로 분류한 나머지 표들에 대한 전면적 수개표 요구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 지면은 그 요구를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통영시민참여연대는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아무 말이 없다.
사전투표 첫날, 강석주 후보 캠프에서 활동해온 K 전 도의원이 통영시 무전동의 한 식당에서 돈봉투를 건네다 현장에서 적발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현재 수사 중이다.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다. 그것이 어느 진영에서 일어났든 마찬가지다. 권력 감시와 시민 주권을 선언한 단체라면 이 사건에 대해 마땅히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 권력 감시를 선언한 단체가 특정 방향의 의혹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반대 방향의 의혹에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감시가 아니라 편들기다.
강석주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K 전 도의원이 자신의 캠프에서 아무 직위도 직책도 맡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는 캠프 내에서 본부장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사실이라면 해명이 필요한 간극이다. 그 해명이 이치에 닿는지 따져 물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통영시민참여연대는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아무 말이 없다.
강석주 당선인이 선관위 앞에 서서 전면 수개표를 요구하는 행동을 스스로 보여줄 것인지도 궁금하다. 당선 소감에서 "혼탁했던 과거를 씻어내겠다"고 했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재검표야말로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통영시민참여연대가 선관위 앞에서 단 10분이라도 수개표의 정당성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아직 들은 바 없다.
'정의구현'을 내걸었던 사제단과 수녀들, 시국선언에 이름을 얹었던 대학교수들이 정권이 바뀌자 광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을 두고 전국적으로 냉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구조는 다르지 않다. 이름에 '시민'을 담고, 출범 선언문에 '정파를 넘겠다'고 새긴 단체가 선거가 끝나자 선택적 침묵에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답이 된다.
선언과 행동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강구안에서의 그 맑고 힘찬 목소리는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날의 선언을 기억한다. 통영시민참여연대가 그 선언을 스스로 기억하는지, 지금이 바로 그것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