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에서 완벽한 범죄자를 너무 많이 봐왔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계획대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인물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진짜 나쁜 짓을 했다면 이렇게 허술했을 리 없다." 이준석 의원이 이형 투표지 의혹에 대응한 방식이 바로 이 논리 위에 서 있었다.
배추잎 표, 일장기 표 — 이형 투표지란 무엇인가
재검표 과정에서 정상 투표지와 다른 모양의 투표지들이 발견됐다. 투표지 하단에 비례대표 투표지 일부가 겹쳐 인쇄된 것, 관리관 도장이 번져서 마치 일장기처럼 보이는 것 등이었다. 의혹 측은 이것들이 정상적인 사전투표 시스템에서는 나올 수 없는 투표지라고 주장했다. 인쇄 과정 자체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었다는 논지였다.
이준석의 해명 — "조작하는 세력이 이렇게 허술했겠냐"
이 대표는 이렇게 받아쳤다. 만약 선거를 조작하려는 거대한 세력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왜 이런 눈에 띄는 흔적을 남겼겠느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라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조직적 조작의 흔적이 아니라 단순한 행정적 실수나 인쇄 오류다.
듣기에 꽤 그럴듯하다. "진짜였으면 더 잘 숨겼을 것"이라는 직관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논리 오류 — 완벽한 악당의 오류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항상 완벽하게 흔적을 지운다고 전제하는 생각. 그래서 허술한 흔적이 나오면 "저건 나쁜 짓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 하지만 현실의 잘못은 대부분 엉성하다.
"허술하니까 조작이 아니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참이어야 한다. "조작을 시도하는 세력은 반드시 완벽하게 흔적을 지운다." 그러나 이 전제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역사상 적발된 부정선거, 선거 조작, 대규모 사기 사건들을 돌아보면 허술한 흔적이 남아서 발각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완벽한 범죄는 드물다. 오히려 규모가 크고 급박하게 진행될수록, 실수와 흔적이 더 많이 남는다. 그리고 허술함은 때로 시간 부족이나 인력 부족, 또는 발각될 거라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이렇게 허술하게 했겠냐"는 말은 논리적으로 이렇게 뒤집힌다. "허술하게 했다는 것은, 오히려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발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허술함은 조작의 반증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조작의 특징일 수도 있다.
비유: 지폐를 위조하다 번진 부분이 있다. "이렇게 조잡하게 만든 게 위조범이겠냐"고 말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조잡한 위조지폐는 매우 흔하다. 조잡하다는 것이 위조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 대표가 했어야 할 반박
물론 이형 투표지가 단순 인쇄 오류나 행정 실수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대표의 반박은 "허술하니까 조작이 아니다"가 아니라 이쪽으로 갔어야 했다. 이런 인쇄 오류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기술적 조건이 무엇인지,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해당 오류가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행정 실수"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기술적 설명 대신 "그들이 이렇게 허술했겠냐"는 반문으로 답했다. 이것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려 한 것이다. 느낌과 논증은 다르다.
범죄는 완벽하지 않다. 사기는 허술하다. 실수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엉성하게 했겠냐"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엉성함이 왜 인쇄 오류나 행정 실수로 더 잘 설명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 작업 없이는 허술함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