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설] 판정을 미룬 자들이, 판정이 끝났다고 말한다
    • — 통영시장 재검표: 유보된 판정, 생략된 증명, 그리고 기습적으로 내려진 결론
    • 재검표 당일, 경남선관위는 스스로 판단을 미뤘다. 인쇄 기표로 의심되는 투표지, 접힌 흔적이 없는 이른바 벽돌 투표지, 좌우 여백이 한쪽으로 쏠린 사전투표지, 일련번호가 절취되지 않은 투표지, 투표관리관 도장이 없는 투표지 — 이 낯선 물건들이 첫 함부터 쏟아져 나오자, 위원들은 18분 동안 회의를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판정하지 않겠다고. 이의가 제기된 표들을 별도로 분류해두고, 재검표는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이 결정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낯선 물건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결론 내리기보다 일단 표시해두고 나중에 따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중'이 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소청 결정문을 보면 답이 나온다. "2026. 7. 27. 투표지등 검증결과 피소청인의 당선인 결정에 위법함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선거 관련 규정 위반 사실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두 문장이다. 판정을 미뤄야 할 만큼 낯설고 많았던 그 표들 — 인쇄 기표 의심 투표지, 벽돌 투표지, 여백 쏠린 사전투표지 250매, 일련번호 미절취 투표지, 도장 없는 투표지 — 이 하나하나 어떻게 검토됐는지, 결정문 어디에도 없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물어야 할 것은 하나다. 현장에서 판정할 능력(혹은 시간, 혹은 근거)이 없어서 미뤘다면, 그 능력·시간·근거는 그 이후 어디서 마련되었는가. 결정문은 그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증명되었다"고, "증거가 없다"고 말할 뿐이다. 증명의 과정은 생략된 채 증명의 결론만 남았다.

      더 이상한 것은 셈이다. 판정이 보류된 그 표들은, 판정되지 않은 채로 이미 유효표로 계산되어 있었다. '38표 차'라는 숫자 안에는 그 유·무효를 둘러싼 이의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표들이 이미 들어가 있다. 판정을 미뤄놓고 셈은 미루지 않은 것이다. 판정할 능력이 없어 유보했다던 그 능력으로, 셈은 어떻게 이미 끝나 있었는가.

      이 결정문을 읽고 나면, 재검표 당일의 그 18분짜리 회의가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신중함의 표현이었는가, 아니면 나중에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벌기 위한 절차였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경남선관위의 몫이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다만 결정문이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절차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이 정도로 낯선 이상 징후가 한 선거의 재검표 과정에서 한꺼번에 발견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위법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일은, 더더욱 흔하지 않다. 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흔하지 않은 일에 대해 흔한 두 문장으로 답하는 것 역시, 그 일이 정말로 별것 아니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경남선관위에 묻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그날 미뤘던 판정을, 언제, 누가, 무엇을 근거로 내렸는가. 그 답을 결정문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갖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공개하면 될 일이다. 갖고 있지 않다면 — 그때는 다른 질문이 남는다. 판정을 미룬 것이 신중함이 아니라 회피였다면, 그 회피는 언제 끝났는가. 아니면, 애초에 끝난 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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