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물가로 인한 민생지원금 논쟁이 전국의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현금성 지원이 단기적인 위안 뒤에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여 더 큰 고통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반복해온 말이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는 비유가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한번 물꼬가 트인 돈풀기는 선거 국면에서 어느 후보도 외면하기 어려운 메뉴가 되어버렸다. 비난하던 쪽마저 표를 앞에 두고 입장을 선회하는 모습은, 나라의 재정 건전성이 정치 논리에 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씁쓸한 풍경이다.
이 글은 민생지원금 자체의 시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실행은 이미 피하기 어려운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다만, 선거의 승패가 갈리는 국면에서 두 후보의 발언 사이에 숨겨진 본질적 차이를 짚어보는 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민생지원금이 옳은 정책이든 아니든, 그 언급 뒤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실제로 마련되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각 후보의 행정 역량과 시장으로서의 자질을 간접적으로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영시장 선거는 현직인 천영기 국민의힘 후보와 전직 시장인 강석주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리턴매치다. 두 후보는 약 일주일 간격을 두고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고, 양측 모두 고유가 민생지원금 지급을 언급하였다. 먼저 입을 연 천영기 후보는 시민 1인당 30만 원을, 뒤이어 강석주 후보는 33만 원을 내세웠다. 숫자만 놓고 보면 3만 원의 차이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3만 원 안에는 단순한 금액의 차이가 아니라, 행정의 현실과 공약의 허실 사이의 심대한 간극이 숨어 있다.
천영기 후보가 말한 30만 원은 민선 9기를 겨냥한 선거 공약이 아니다. 그것은 민선 8기 시정의 결과물이다. 그가 밝힌 재원은 통영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으로, 지난 4년간의 시정을 통해 축적한 748억 원이다.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재정 위기나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 50%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재원이다. 천 후보는 이 기금을 근거로 이미 입법 예고까지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 30만 원 지원은 6월 선거의 승패와 무관하게 민선 8기의 행정 집행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공약이 아니라 이미 행정 절차를 밟고 있는 시정 보고의 일부다.
반면 강석주 후보의 33만 원은 민선 9기를 전제로 한 공약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강 후보가 내세운 33만 원의 근거가 천 후보가 언급한 것과 동일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이라면, 그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 재원은 강 후보가 민선 9기 시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6월에 이미 천 후보의 민선 8기 행정을 통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강 후보의 33만 원은 자신이 마련한 재원이 아니라, 상대 후보가 4년에 걸쳐 쌓아놓은 재원 위에 3만 원을 얹어 더 크게 부른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천영기 후보가 개소식에서 던진 한 마디, "그 3만 원은 부가세인가요?"는 단순한 야유가 아니다. 재원도, 절차도, 시기도 불분명한 공약에 대한 냉정한 질문이다. 강석주 후보는 이에 응답해야 한다. 33만 원이라는 숫자가 어느 기금에서 나오는지, 언제 지급되는지, 어떤 행정 절차를 거쳤는지를 시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것이 선거 공약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성의다.
공약의 무게는 숫자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30만 원이든 33만 원이든, 그 언급 뒤에 4년간의 재정 관리라는 행정의 실적이 있느냐, 아니면 상대의 숫자에 편승한 계산이 있느냐 — 그 차이야말로 유권자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시민의 세금으로 쌓인 748억 원은 누군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언제, 어떻게, 어떤 준비를 거쳐 쓸 것인가를 4년 동안 실제로 고민하고 집행해온 사람이 누구인가는 분명히 다른 문제다.